무고죄 성립요건

사람이 견디기 힘든 심정 중 하나가 억울함이 아닐까 합니다. 자신이 죄를 지은 사실이 없음에도 범죄자로 몰려 수사기관의 수사를 받거나 더 나아가 재판을 받게 된다면 그 사람의 심정은 말할 수 없이 비참할 것입니다. 한편, 죄 없는 사람을 수사, 재판하며 들인 행정력과 사법자원의 낭비는 그 자체로 국가적 손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법은 한 사람의 인생을 파탄시킬 수 있고 국가의 수사, 재판기능에 장애를 초래할 수 있는 이런 무고행위를 방지하고자 무고죄 규정을 형법에 입법하여 두고 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이 무고죄의 성립요건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무고죄란 무엇인가??

무고죄란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 또는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공무소 또는 공무원에 대하여 허위의 사실을 신고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입니다. 즉, 사실이 아닌 것을 꾸며내어 처벌 또는 징계 불이익을 받게 하기 위해 해당기관에 처벌을 구하는 의사표시를 말하는 데요, 이 무고죄는 앞서 말씀드린대로 개인의 법적 지위에 억울함이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을 보호하는 목적과 함께 국가의 수사, 심판기능이 허위의 무고로 인해 저해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는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법 조문을 우선 함께 보실까요.

 

 

형법

제156조(무고)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 또는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공무소 또는 공무원에 대하여 허위의 사실을 신고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개정 1995. 12. 29.>

제157조(자백·자수)
제153조는 전조에 준용한다.

제153조(자백, 자수)
전조의 죄를 범한 자가 그 공술한 사건의 재판 또는 징계처분이 확정되기 전에 자백 또는 자수한 때에는 그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한다.

무고죄가 성립하기 위해 갖춰야 할 요건들은 무엇인가??...

범죄의 주체

 

우선 이 범죄를 누가 저지를 수 있을까요??..형법 및 기타 처벌규정들 중에는 특별한 신분이 있어야지만 범죄가 성립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무고죄의 경우에는 특별히 그런 신분을 요구하는 내용은 없습니다. 따라서 어느 누구라도 이 범죄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할 것인데요,  다만, 위 조문을 보시면 신고를 받는 대상과 관련하여 공무소 또는 공무원이라는 제한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위 공무소 또는 공무원의 의미와 관련해서 학설이 조금은 대립하는데,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내용은 모든 공무원이 아니라 형사처분, 징계처분에 대해서 직권행사를 할 수 있는 경찰관, 경찰서, 검사, 검찰 등으로 제한된다고 합니다. 

 

허위사실의 의미는...

무고죄에서의 허위사실의 의미와 관련해서는 판례가 분명히 판시한 내용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시겠습니다.

 

무고죄는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 등을 받게 할 목적으로 신고한 사실이 객관적 진실에 반하는 허위사실인 경우에 성립되는 범죄로서, 신고자가 그 신고내용을 허위라고 믿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객관적으로 진실한 사실에 부합할 때에는 허위사실의 신고에 해당하지 않아 무고죄는 성립하지 않는 것이며, 한편 위 신고한 사실의 허위 여부는 그 범죄의 구성요건과 관련하여 신고사실의 핵심 또는 중요내용이 허위인가에 따라 판단하여 무고죄의 성립 여부를 가려야 한다.
(출처 : 대법원 1991. 10. 11. 선고 91도1950 판결 [무고] > 종합법률정보 판례)

 

위 내용이 무고죄에서의 허위사실의 의미를 밝히는 내용인데요, 판례는 객관적 진실에 반하는 사실이 허위사실이라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객관적' 부분입니다. 내가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었다고 하더라도 수사기관의 수사결과 객관적으로는 가짜로 밝혀졌다면 어쨌든 허위사실에 해당됩니다. 다만, 신고자가 진실이라고 확신하고 신고했을 때에는 무고죄의 고의가 인정되지 않아서 범죄성립이 부정될 수는 있습니다. 다음의 판례를 잠깐 보시겠습니다.

무고죄에 있어서 허위사실의 신고라 함은 신고사실이 객관적 사실에 반한다는 것을 확정적이거나 미필적으로 인식하고 신고하는 것을 말함이니, 가사 고소사실이 객관적 사실에 반하는 허위의 것이라 할지라도 그 허위성에 대한 인식이 없을 땐 무고에 대한 고의가 없다고 할 것이다.
(출처 : 대법원 1983. 11. 8. 선고 83도2354 판결 [무고] > 종합법률정보 판례)

허위사실을 기관에 신고하였으나 무고죄가 성립하지 않는 경우 

 

허위의 사실이 수사기관 등에 도달했을지라도 그 사실자체가 너무 터무니 없는 내용이어서 징계절차나 처벌절차가 작동할 염려 자체가 없는 경우, 이런 경우에는 무고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한가지 사례를 보여드려 보면, 

 

 

수사기록에 편철된 이 사건 고소장의 기재 내용을 살펴보면 그 고소취지는, “피고소인 공소외 1은 1998. 11. 3. 피고인과의 사이에 피고인이 1999년부터 2008년까지 10년간 공소외 1 소유의 이 사건 전답을 경작·관리함과 아울러 이 사건 임야에 자생하는 송이를 채취하고, 공소외 1에게 그 대가를 지급하기로 하는 내용의 토지경작관리계약을 체결하였는데, 공소외 1이 2002. 7.경 공소외 2, 3에게 이 사건 임야에 자생하는 송이의 채취권을 이중으로 넘겨주어 피고인으로 하여금 손해를 입게 하였으므로 공소외 1을 엄벌하여 달라”는 것임을 알 수 있는바, 피고인의 고소사실이 위와 같다면, 위와 같이 장차(1999년부터 2008년까지의 기간 동안) 이 사건 임야에서 자생하게 될 송이를 채취할 수 있는 권리를 피고인에게 양도한 공소외 1이 피고인의 송이채취를 방해하지 않아야 할 의무는 민사상의 채무에 지나지 아니하여 이를 타인의 사무로 볼 수 없고, 따라서 비록 공소외 1이 위 송이채취권을 이중으로 양도하였다고 하더라도 횡령죄나 배임죄 기타 형사범죄를 구성하지는 않는다고 할 것이므로, 형사범죄가 되지 아니하는 내용의 허위사실을 피고인이 신고하였다 하여도 피고인에 대한 무고죄는 성립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출처 : 대법원 2007. 4. 13. 선고 2006도558 판결 [무고] > 종합법률정보 판례)

 

위와 같이 어떤 허위사실을 수사기관에 신고했다 하더라도 그 사실 자체가 형법이 됐든 특별형법이 됐든, 처벌조항 내지는 징계조항 어디에는 해당이 되어야 하는데, 그 사실자체가 범죄를 구성하지 않으면 무고죄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신고

자발적으로 수사기관에 대하여 허위의 사실을 신고하여야 합니다. 따라서 수사기관의 물음에 대해 답변을 하는 정도로는 자발성을 인정하기가 힘듭니다. 

 

범죄가 완성되는 시점

우리 법의 기본원칙(도달주의)에 따라 허위사실의 신고가 위에서 검토한 공무소나 공무원에게 도달하게 되면 그 때에 범죄가 완성됩니다. 따라서 이미 도달이 된 이상 뒤늦게 서류를 되돌려 달라고 요구하고 그것을 실제도 돌려받는다고 하더라도 이미 완성된 무고죄에는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낙장불입입니다. 

고의

무고죄 역시 고의범이기 때문에 무고죄를 범한다는 범죄사실에 대한 고의가 있어야 합니다. 확정적인 고의를 요하는 것은 아니고 미필적 고의로도 충분합니다. 미필적 고의란 범죄결과가 발생할지도 모를 거라는 인식을 했음에도 이를 용인 내지 감수하는 심정적 태도 정도로 이해하시면 충분할 겁니다. 

 

무고죄에 있어서의 범의는 반드시 확정적 고의임을 요하지 아니하고 미필적 고의로서도 족하다 할 것이므로 무고죄는 신고자가 진실하다는 확신없는 사실을 신고함으로써 성립하고 그 신고사실이 허위라는 것을 확신함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출처 : 대법원 1988. 2. 9. 선고 87도2366 판결 [무고] > 종합법률정보 판례)

 

성폭행 또는 성희롱 사건 고소와 무고죄

 

성폭행이나 성희롱 사건의 경우, 대부분 피해자의 고소로 수사착수가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피해자는 잠재적으로 무고죄의 위험을 안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피해자임을 주장하는 자가 성폭행 등의 피해를 입었다고 신고를 했는데, 그 사건이 결국 증거불충분 등을 이유로 불기소처분되거나 무죄판결이 선고되는 경우에는 결과적으로 성폭행 피해자는 허위의 사실을 신고한 것으로 볼 수도 있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성범죄 사건의 경우에는 조금 특수성이 있습니다. 미투운동이 반영해주는 것처럼 여성은 그동안 사회적 약자의 지위에서 그 의사에 반한 성범죄 피해를 당했음에도 그 범죄사실을 밝히고 처벌을 구하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알리고 처벌을 구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피해자가 여론의 지탄 대상이 되거나 신분노출에 따른 2차 가해를 당한 선례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실을 반영해서 대법원에서는 다음과 같은 판시를 통해 성범죄 피해자의 피해주장사실에 대해 불기소처분이나 무죄판결이 났다 해도 그 신고내용이 무고죄가 성립하는지를 판단할 때에는 성폭력 피해자의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여 판단할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성폭행이나 성희롱 사건의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알리고 문제를 삼는 과정에서 오히려 피해자가 부정적인 여론이나 불이익한 처우 및 신분 노출의 피해 등을 입기도 하여 온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및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개별적, 구체적인 사건에서 성폭행 등의 피해자가 처하여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

위와 같은 법리는, 피해자임을 주장하는 자가 성폭행 등의 피해를 입었다고 신고한 사실에 대하여 증거불충분 등
을 이유로 불기소처분되거나 무죄판결이 선고된 경우 반대로 이러한 신고내용이 객관적 사실에 반하여 무고죄가 성립하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고려되어야 한다. 따라서 성폭행 등의 피해를 입었다는 신고사실에 관하여 불기소처분 내지 무죄판결이 내려졌다고 하여, 그 자체를 무고를 하였다는 적극적인 근거로 삼아 신고내용을 허위라고 단정하여서는 아니 됨은 물론, 개별적, 구체적인 사건에서 피해자임을 주장하는 자가 처하였던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아니한 채 진정한 피해자라면 마땅히 이렇게 하였을 것이라는 기준을 내세워 성폭행 등의 피해를 입었다는 점 및 신고에 이르게 된 경위 등에 관한 변소를 쉽게 배척하여서는 아니 된다(대법원 2019. 7. 11. 선고 2018도2614 판결).

글을 마무리하며

무고죄는 그 자체로 독립한 범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이의 고소사실이 또 다른 허위사실로 반전되는 면이 있어서 완전히 독립적인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무고죄 관련 판례를 읽을 때에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집중력을 요하는 부분입니다. A사건의 피해자가 무고죄의 가해자가 되고 A사건의 피고인은 무고사건에서는 피해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포스팅을 하며 그런 복잡한 내용들이 담긴 사례들도 함께 소개해드려볼까 고민을 했었는데요, 다음 기회에 해보기로 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